JS 패션 1층 로비는 몰려든 취재진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단상을 향해 일제히 셔터를 눌러댔고, 생중계용 조명은 눈이 시릴 정도로 밝았다. 잠시 후, 감색 수트를 빈틈없이 차려입은 서준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의 표정은 비장하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JS 패션 사장 강서준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최근 저와 관련된 소문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말씀드리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서준의 첫마디에 장내에 정적이 흘렀다. 같은 시각, 서울의 한 한적한 버스 정류장. 다은은 짐가방을 발치에 둔 채 편의점 앞 TV에서 흘러나오는 서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창신동 골목길에서의 사진, 맞습니다. 제가 이다은 씨를 안았고, 제가 먼저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권력을 이용한 특혜도, 가벼운 추문도 아닙니다."
서준은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치 그 너머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 다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다은 씨는 '리-본' 프로젝트의 핵심이자, 제게 패션의 본질을 다시 가르쳐준 사람입니다. 그녀의 실력은 이미 런웨이와 창신동 팝업스토어의 성과로 증명되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 사랑을 빌미로 그녀의 노력을 폄훼한다면, 저는 JS 패션의 사장직을 포함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그녀의 곁에 서겠습니다."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재벌 3세가 신입사원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장직을 걸다니, 대한민국 패션계 역사상 유례없는 파격 선언이었다. 서준은 품 안에서 다은이 남기고 간 사직서를 꺼내 보였다.
"이다은 씨, 당신이 남긴 이 사직서... 저는 수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없는 JS 패션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당신은 나를 런웨이 위에 세워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도망치지 마세요. 이제는 내가 당신의 런웨이를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TV 화면 속 서준의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서렸다. 다은은 입을 막은 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남자의 진심이 스크린을 뚫고 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바보같이... 왜 다 걸어버려요, 왜..."
다은은 짐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를 비난하던 사람들의 시선, 서진 전무의 협박,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서준의 용기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다은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택시를 잡았다.
한편, 기자회견장 뒷문으로 나오던 서준 앞에 강 회장이 비서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강 회장의 얼굴은 노기로 가득 차 있었다.
"너 미쳤구나!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회사를 통째로 흔들어?"
"아버지, 회사가 흔들리는 건 제 연애 때문이 아니라, 실력을 시기해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숨지 않습니다."
서준은 강 회장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다은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비서의 연락이 온 직후였다.
서울의 밤거리를 가로질러 서준이 도착한 곳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진심을 나눴던 그 작은 파스타 식당 앞이었다. 그곳엔 다은이 짐가방을 든 채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다은 씨!"
서준이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다은은 달려가 서준의 품에 안겼다. 두 사람을 비추는 노란 가로등 불빛은 마치 축복의 핀 조명 같았다.
"왜 안 왔어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미안해요, 서준 씨. 무서웠어요. 나 때문에 당신이 다 잃을까 봐..."
"당신을 잃는 게 다 잃는 거예요. 이제 절대 안 놓습니다."
서준은 다은을 더 꽉 끌어안았다. 기자회견의 여파로 세상은 시끄러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울의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한 침묵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재회를 멀리서 지켜보며 차갑게 미소 짓는 유채영의 그림자가 또다시 길어지고 있었다.
[다음 회 예고]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야." 서준의 해임안을 상정한 이사회가 소집되고, 유채영은 다은의 과거 포트폴리오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최후의 공격을 퍼붓는데... 위기의 다은과 서준, 그들이 준비한 기막힌 반격 카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