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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0화:서울에서 온 바람, 그리고 단단한 뿌리 포구 앞 천막에서 주민들의 뜨거운 연대를 느끼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날 오후, 청호리 치과 앞마당에 어제와는 또 다른 묵직한 공기가 내려앉았다.조용한 바닷가 시골길에 어울리지 않는, 광택이 흐르는 최고급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천천히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우아한 트위드 재킷을 입은 중년 여성과 굳은 표정의 신사였다. 윤서의 어머니, 송혜숙 여사와 아버지 이찬영 원장이었다. 그들의 뒤편에는 한민우가 승리감에 도취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치과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발견한 윤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울을 떠나온 이후 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거대한 벽이 기어코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혜윤아!”치과 문을 열고 들어선 송 여사는 대기실을 둘러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내.. 2026. 7. 16.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9화:푸른 바다의 방파제, 청호리 사람들 치과로 돌아온 윤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료 의자에 앉아 있었다.어스름한 저녁 빛이 비쳐 드는 진료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지만, 한 달 뒤면 이 모든 공간이 흙먼지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왔다. 이제 막 마음을 붙이고 진짜 의사로서의 보람을 찾기 시작한 곳이었다. 청호리의 파도 소리와 은빛 윤슬이 매일 아침 그녀를 위로해 주던 이곳을 지킬 수 없다는 무력감이 그녀를 짓눌렀다.“윤서 씨.”어느새 다가온 태현이 윤서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녀의 차가운 두 손을 감싸 쥐었다. 그의 따뜻하고 단단한 손길이 닿자 참았던 눈물이 결국 툭 하고 흘러내렸다.“미안해요, 태현 씨… 나 때문에 태현 씨까지 그 사람에게 심한 소리를 듣게 하고… 나 때문에 이 조용한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것 .. 2026. 7. 14.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8화:폭풍 전야의 달콤함과 위기의 그림자 밤바다에서의 고백 이후, 윤서의 세상은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었다.이른 아침 치과 문을 열 때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람마저 마치 태현의 다정한 숨결처럼 느껴졌다. 출근길에 마주친 청호리 바다는 유난히 더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원장님,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아침부터 콧노래를 다 부르시고.”출근하자마자 차트를 정리하던 경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윤서는 짐짓 모르는 척 귀 뒤로 머리를 넘기며 대답했다.“날씨가 좋아서요, 경희 씨. 오늘 예약 환자 많죠? 얼른 준비해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윤서의 주머니 속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징징 울려댔다.[태현: 오늘 아침 바다가 윤서 씨 닮아서 아주 예쁩니다. 점심에 치과 뒤뜰로 잠깐 나올래요? 맛있는 샌드위치 싸갈게요.]메시지를 읽는 윤서의.. 2026. 7. 12.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7화:밤바다에 흐르는 달빛 윤슬 민우는 쉽게 청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간 줄 알았건만, 그는 마을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해변 리조트에 장기 투숙을 하며 치과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점심시간 즈음에는 고급 레스토랑의 도시락이 치과로 배달되기도 했고, 퇴근길 길목에는 어김없이 그의 은색 세단이 서 있어 윤서의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민우는 직접 다가와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자신이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시위하며 윤서의 일상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었다.‘난 결국 그 세계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없는 걸까.’진료실 창가에 서서 멀리 보이는 은색 세단을 바라보던 윤서의 한숨이 깊어졌다. 서울에서의 아픈 기억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라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만 같았다.“원장님, 얼굴이 반쪽이 됐어요. 무슨 고.. 2026. 7. 10.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6화:바다 위에 그어진 선 “영업?”민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청호리의 흙먼지 묻은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듯 코를 찡긋거리던 민우는, 태현의 낡은 셔츠와 다리의 붕대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어디서 푼돈 만지는 시골 장사꾼이 내 앞을 막아서는 거지? 비켜. 난 이혜윤과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니까.”민우의 오만한 말투에도 태현은 까딱없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서며 윤서를 제 등 뒤로 완전히 감추었다. 다친 다리 때문에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그의 넓은 어깨는 바다를 막아선 방파제처럼 단단하고 미동조차 없었다.“여기서 버는 돈이 푼돈이든 억만금이든, 그건 손님이 상관하실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 가게 안에서 제 소중한 사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건, 사장으로.. 2026. 7. 7.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5화:매일 너에게 가는 길, 그리고… 그날 밤 이후, 윤서의 아침은 이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시작되었다.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묶었다가 풀기를 서너 번, 결국 평소처럼 단정하게 흘러내리는 반묶음 머리를 하고서야 윤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거울 속 자신의 뺨이 발갛게 가라앉지 않는 것은 단지 아침 햇살 탓이 아니었다.‘윤서 씨.’태현이 처음으로 제 이름을 불렀던 목소리가, 그리고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던 그 단단한 손길이 자꾸만 귓가와 살결에 맴돌았다. 서울에서의 상처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심장이 봄볕을 맞은 눈처럼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었다.“원장님, 오늘 오전 진료 끝나고 또 ‘청호 웨이브’ 가시는 거죠?”마침 소독 기구를 정리하던 조무사 경희가 눈을 찡긋하며 물었다. 윤서는 짐짓 차분한 척 소독약 상자를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네,.. 2026.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