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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6화:무너진 오만과 마침내 찾은 이름 다음 날 아침, 청호리 포구는 어제까지의 음산했던 안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걷히고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다.치과 문 앞에서 초조하게 발을 굴리던 윤서의 눈앞에 이른 아침 첫 버스에서 내린 태현의 모습이 보였다. 태현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윤서가 달려가자 태현은 환하게 웃으며 서류 봉투를 들어 보였다."윤서 씨! 다 끝났습니다. 이제 치과 문 환하게 엽시다."태현의 말과 함께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치과 앞으로 보건소 의약과 과장과 윤리위원회 관계자가 다급하게 찾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냉정하게 차트를 수거해 가던 그들의 표정에는 완연한 당혹감과 미안함이 서려 있었다."이윤서 원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강남 병원 측 및 법무법인 한성에서 제출했던 수술 진단서와 엑스레.. 2026. 7. 28.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5화:서울에서의 반격과 뜻밖의 지원군 영업 정지 딱지가 붙은 치과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도 윤서는 외롭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감자며 단호박, 싱싱한 전복죽을 들고 찾아와 윤서의 곁을 지켰고, 경희 역시 치과 내부 청소를 도우며 원장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었다.그리고 그 시각, 태현은 윤서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이른 새벽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몇 시간 뒤 도착한 서울의 풍경은 청호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회색빛 빌딩 숲과 빽빽한 도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차가운 표정. 한때 윤서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을 이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서, 태현은 깃을 여미며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태현이 향한 곳은 한국법의학연구소 내에 위치한 대학 동문 형의 연구실이었다."태현아, 네가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시골에서 서.. 2026. 7. 26.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4화:빼앗긴 가운과 가장 굳건한 신뢰 새벽녘 물류 창고에서 실어 온 약품과 의료 소모품을 치과 선반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자, 진료실 안에는 든든한 온기가 가득 채워졌다."윤서 씨, 오늘은 출발이 아주 좋습니다. 선배 조합 덕분에 한숨 돌렸네요."태현이 커피잔을 들고 활짝 웃었다. 윤서 역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의사 가운을 걸쳐 입었다. 바다가 준 선물 같은 이 작고 따뜻한 공간에서, 제 힘으로 환자를 고치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윤서가 그토록 바랐던 진짜 행복이었다.하지만 그 평화는 채 세 시간을 가지 못했다.오전 진료가 한창이던 11시경, 칙칙한 정장 차림의 남성 네 명이 굳은 표정으로 치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신분증을 꺼내 보인 이들은 관할 보건소 의약과 공무원들과 대한치과의사협회 윤리위원회 소속 조사관들이었다."이윤서 원장님 계십.. 2026. 7. 24.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3화:찬란한 출장 데이트와 다가오는 먹구름 이른 아침의 청호리 포구는 짙푸른 새벽빛과 붉은 아침 해가 뒤섞여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오전 진료를 비워둔 윤서는 가벼운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치과 앞마당으로 내려왔다. 이미 태현은 잘 닦인 그의 소형 SUV 시동을 걸어둔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태현은 윤서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늘따라 유난히 더 아름다우십니다, 이 원장님. 출장이 아니라 소풍 가는 기분인데요?”태현의 다정한 너스레에 윤서의 뺨이 아침 노을처럼 발갛게 물들었다.“놀리지 말아요, 태현 씨. 긴급하게 재료 구하러 가는 길인데 마음이 아주 타들어 간다고요.”“걱정 붙들어 매세요. 제 선배가 아주 확실한 분이니까요. 자, 출발합니다!”차가 청호리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창밖으로 탁 트인 동해.. 2026. 7. 22.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2화:보이지 않는 장벽과 새로운 통로 라이브 방송의 여파는 생각보다 훨씬 엄청났다.용역들이 물러간 지 삼일 만에, 청호리 포구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외지 환자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유튜브와 SNS를 타고 퍼진 ‘꽃과 바다의 방어전’ 영상이 대기업의 갑질에 맞선 시골 사람들의 따뜻한 승리로 포장되어 큰 감동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원장님! 오전 예약 환자분들 진료 다 끝났는데, 대기실에 접수 없이 오신 분들이 대여섯 분이나 더 계세요. 서울에서 일부러 치과 보러 오셨대요!”조무사 경희가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며 차트를 흔들었다. 윤서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느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싱긋 웃었다.“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경희 씨. 조금만 더 힘내요. 기다리시는 분들 지루하지 않게 따뜻한 차라도 한 잔씩 대접해 드리고요.”진료실 창밖으.. 2026. 7. 20.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1화:꽃과 바다의 방어전 부모님이 떠난 지 이틀 뒤, 청호리 포구의 아침은 지독하게 짙은 안개로 시작되었다.윤서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치과 문을 열었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한 탓에 손끝이 조금 차가웠다. 이 원장의 묵직한 퇴장 이후 민우가 어떤 극단적인 방법을 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포구 진입로 쪽에서 거친 기계음과 함께 대형 트럭 두 대와 주황색 굴착기 한 대가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트럭에서 내린 이들은 검은색 바람막이를 맞춰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었다. 강제 철거를 집행하기 위해 민우가 동원한 철거 용역들이었다.민우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사내들의 맨 앞에 서서 확성기를 잡았다.“청호리 주민 여러분, 그리고 이윤.. 2026.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