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의 파격적인 기자회견은 세상을 뒤흔들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다음 날 아침, JS 패션 사옥 앞은 해임을 요구하는 주주들과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준의 형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
“강 사장, 제정신인가? 회사 가치를 지키겠다고 공언하더니, 결국 사적인 감정으로 브랜드를 진흙탕에 처박았어.”
강서진 전무의 서슬 퍼런 공격에도 서준은 꼿꼿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유채영 실장이 이사회장에 난입하듯 들어와 서류 뭉치를 던진 것이다.
“이게 다입니까? 강 사장님이 지키려던 그 ‘진심’이라는 게 사실은 ‘도둑질’이었다면요?”
서류에는 다은이 기획한 ‘리-본’ 라인의 초기 스케치와 해외 무명 디자이너의 과거 포트폴리오가 나란히 비교되어 있었다. 자수의 위치, 메모리 태그의 개념까지 흡사해 보였다. 유채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이다은 씨가 예전 공모전 준비 때 해외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참고한 기록을 찾았습니다. 표절 기획으로 회사를 속인 신입사원, 그리고 그걸 감싼 사장. 이래도 사장직을 유지하시겠습니까?”
순식간에 이사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소식을 전해 들은 다은은 마케팅팀 사무실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 스케치는 할머니의 보자기 문양에서 따온 건데...”
다은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노트를 뒤졌다. 하지만 유채영이 제시한 증거는 정교하게 조작되어 있었다. 해외 디자이너의 게시물 날짜가 다은의 기획 시점보다 앞서도록 조작된 상태였다. 절망에 빠진 다은의 곁으로 서준이 다가왔다. 이사회를 잠시 중단시키고 내려온 그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다은 씨, 나를 봐요. 본인이 한 거 맞죠? 누구의 것도 훔치지 않았죠?”
“네... 정말이에요, 서준 씨. 저는 맹세코...”
“그럼 됐습니다. 증거가 조작되었다면, 진짜 증거를 찾으면 됩니다.”
서준은 다은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이미 비서실을 통해 유채영의 최근 행적을 조사하라고 지시한 상태였다. 서준은 다은이 예전에 말했던 ‘할머니의 손수건’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은 씨, 그 할머니 손수건...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게 이 기획의 진짜 ‘뿌리’잖아요.”
다은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본가에 있어요! 고향 집에 할머니가 직접 자수를 놓으시던 옛날 일기장이랑 손수건들이 다 남아있어요!”
“가죠. 지금 당장.”
서준은 다은을 이끌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뒤에서 서진 전무와 채영이 소리를 질렀지만 서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준의 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 다은의 고향으로 질주했다.
차창 밖으로 흐려지는 서울의 야경을 보며 다은은 서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그는 단 한 번도 다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저를 믿어주세요? 사장님 자리까지 위험한데...”
서준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낮게 대답했다.
“처음 당신이 내 옷에 라떼를 쏟았을 때, 당신 눈은 당황해서 떨리고 있었지만 옷을 닦아주던 손길만큼은 정말 간절했어요. 그 간절함은 절대 거짓말을 못 하거든요. 나는 내 안목보다, 당신의 그 손길을 믿습니다.”
두 사람의 차는 어둠을 뚫고 다은의 추억이 깃든 시골 마을로 향했다. 그것은 조작된 프레임을 깨부수고, 진실이라는 이름의 런웨이를 다시 세우기 위한 마지막 여정이었다.
한편, 서울에 남은 유채영은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그녀의 컴퓨터 화면에는 날짜 조작 프로그램이 여전히 띄워져 있었다. 그녀는 알지 못했다. 서준이 이미 그녀의 사무실 CCTV와 서버 기록을 복구하기 위해 보안 팀을 움직였다는 사실을.
[다음 회 예고] 다은의 고향 집에서 발견된 낡은 일기장. 그 속에 담긴 놀라운 반전의 증거! 그리고 이사회 당일, 서준과 다은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방식으로 유채영의 가면을 벗기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