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 패션의 심장부인 20층 회장실. 두꺼운 마호가니 문이 열리자,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다은을 덮쳤다. 그곳엔 JS 패션의 창업주이자 서준의 아버지, 강 회장이 매서운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어제 동대문 골목에서 다정하게 원단을 들고 걷던 다은과 서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자네가 이다은인가?”
강 회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위엄이 있었다. 다은은 마른침을 삼키며 허리를 숙였다.
“네, 마케팅팀 신입사원 이다은입니다.”
“신입사원이 사장과 밤거리를 쏘다니며 사진이 찍히다니. 덕분에 우리 홍보팀이 아침부터 아주 바쁘더군. 패션 회사는 이미지가 생명인데, 자네가 내 아들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비수 같은 말들이 다은의 가슴을 찔렀다. 다은은 떨리는 손을 꽉 맞잡았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회장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회장님, 그 사진 속의 모습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라, 사라진 원단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위기에 처한 프로젝트를 살리기 위해 직접 발로 뛰신 것이고, 저는 그 열정을 따랐을 뿐입니다.”
“말은 잘하는군. 하지만 결과가 없으면 그건 변명일 뿐이야.”
강 회장이 헛기침을 하던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서준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초조함으로 굳어 있었다. 서준은 다은의 앞을 가로막으며 회장을 마주 보았다.
“아버지, 이 사람 부른 이유가 저 때문이라면 저와 말씀하시죠. 이다은 씨는 제 지시를 따랐을 뿐입니다.”
“지시? 시장 골목에서 그렇게 다정하게 웃는 게 지시였단 말이냐? 너답지 않게 왜 이렇게 냉정함을 잃어!”
강 회장의 호통에 서준은 오히려 차분하게 대답했다.
“냉정을 잃은 게 아니라, 진심을 찾은 겁니다. 제가 ‘리-본’ 프로젝트에 목을 매는 이유, 그리고 이다은 씨를 끝까지 믿는 이유. 그건 이 사람이 우리 회사가 잊고 있던 ‘옷에 대한 진심’을 일깨워줬기 때문입니다.”
서준은 다은의 손을 꽉 잡았다. 수많은 카메라와 직원들의 눈보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다은을 지키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아버지, 이번 런칭쇼에서 증명하겠습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패한다면, 저 사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더 이상 이다은 씨의 실력과 인격에 대해 누구도 토 달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다은은 깜짝 놀라 서준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위해 사장직까지 걸다니. 서준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뜨겁고도 단단했다. 강 회장은 한참 동안 아들을 응시하다가 허허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좋다. 사장직을 걸었다 이거지? 일주일 뒤 런칭쇼. 그게 네놈과 이 신입사원의 운명을 결정할 거다. 나가봐!”
회장실을 나온 두 사람.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은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사장님... 왜 그런 무리한 약속을 하셨어요? 저 때문에 사장님 인생이 걸린 거잖아요.”
서준은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고 다은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다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이다은 씨 인생도 걸린 일입니다. 그리고 나, 지는 싸움은 안 해요. 당신이 만든 그 옷, 내가 세상에서 가장 빛나게 만들 거니까.”
서준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다은은 그 눈빛을 보며 깨달았다. 이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서로를 향한 믿음의 증명이었고, 서울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시작된 두 사람의 진짜 사랑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창밖의 서울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처럼, 두 사람의 앞날도 그렇게 맑게 개기를 다은은 간절히 기도했다.
[다음 회 예고] 드디어 다가온 런칭쇼 디-데이! 하지만 유채영 실장의 마지막 방해 공작으로 메인 모델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텅 빈 런웨이, 모두가 당황한 그때 서준이 다은에게 건넨 파격적인 제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