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칭 이벤트를 단 사흘 앞둔 아침, JS 패션 마케팅팀은 비명 섞인 외마디 소리로 시작되었다.
"원단이... 원단이 없어요!"
다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리-본(Re-Born)' 라인의 메인 의상을 제작할 핵심 원단인 '빈티지 리넨 실크' 롤이 보관 창고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 원단은 이탈리아의 한 오래된 공방에서 폐기 직전의 원사를 모아 특수 제작한 것으로, 지금 당장 해외 주문을 넣어도 도착까지 최소 2주는 걸리는 귀한 물건이었다.
"누가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신입, 정신 안 차려?"
최 이사의 호통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은은 사색이 되어 창고를 뒤졌다. 하지만 CCTV는 마침 점검 중이었다는 허망한 답변만 돌아왔다. 구석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채영 실장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거봐, 아마추어한테 큰일을 맡기면 꼭 이런 사단이 난다니까. 서준아, 이제라도 메인 의상을 내 디자인으로 교체하는 게 어때?"
서준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그는 떨고 있는 다은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다은의 눈에는 억울함보다, 프로젝트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책임감과 슬픔이 더 크게 고여 있었다.
"아니, 아직 방법이 있습니다."
서준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은의 손목을 잡았다.
"이다은 씨, 따라와요. 발로 뛰어서라도 찾아내야지."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서울의 심장,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이었다. 수천 개의 원단 스와치가 펄럭이고, 오토바이들이 좁은 골목을 아슬아슬하게 누비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 럭셔리한 사옥과는 180도 다른 풍경에 다은은 얼떨떨해했다.
"여기라면... 혹시 모르죠. 예전에 우리 회사에 납품하던 장인분이 이 근처에 개인 창고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이라면 비슷한 질감의 데드스톡(재고 원단)을 가지고 계실지도 몰라요."
서준은 수트 차림으로 땀을 흘리며 다은과 함께 미로 같은 시장 골목을 뒤졌다. 사장님이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상인들에게 일일이 묻고 다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은은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해는 저물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질 무렵, 두 사람은 시장 끝자락의 낡은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그곳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원단들이 가득했다.
"이건가요?"
서준이 구석에서 찾아낸 원단을 다은에게 보여주었다. 다은은 조심스럽게 원단을 만져보았다. 사라진 원단보다 조금 더 거칠었지만, 오히려 '다시 태어난다'는 리-본의 컨셉에는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오묘한 빛깔의 천이었다.
"사장님... 이거예요! 아니, 이전 것보다 훨씬 더 좋아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빛을 받으면 반짝거려요!"
다은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원단을 껴안았다. 서준은 그런 다은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을 빠져나오는 길, 두 사람의 손에는 묵직한 원단 롤이 들려 있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이다은 씨. 범인은 내가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당신은 이 원단으로 기적을 만들어봐요."
시장의 활기찬 소음 속에서 서준이 다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다은의 심장이 길거리 노점상의 불꽃처럼 탁 튀어 올랐다.
"저... 사장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저 혼자였다면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우리는 팀이고, 나는... 당신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싶으니까."
서울의 밤거리는 시장 상인들의 활기와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긴장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위기는 기회가 되었고, 사라진 원단은 두 사람의 마음을 잇는 더 단단한 실타래가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회사 로비에는 어제 다은과 서준이 동대문 골목에서 다정하게 걷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또다시 익명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다음 회 예고] "이 사진, 설명해 보시죠." 서준의 아버지이자 JS 패션의 회장님이 전격 등장! 다은은 회장실로 호출되고, 서준은 다은을 지키기 위해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