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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11화: 비어버린 런웨이, 뜻밖의 모델

by AK98 2026. 5. 7.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거대한 곡선 아래, JS 패션의 '리-본(Re-Born)' 라인 런칭쇼가 열리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과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흐르고, 패션계의 거물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투어 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백스테이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뭐라고요? 메인 모델이 아직 도착을 안 했다니요?"

다은의 목소리가 절망적으로 떨렸다. 쇼의 피날레를 장식할 메인 의상인 '동대문 리넨 실크 자켓'을 입기로 한 톱모델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이송되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사고 지점은 유채영 실장이 추천했던 메이크업 샵 근처였다.

"이건 사고가 아니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길을 막은 거라고!"

지수 과장이 분노했지만, 지금 당장 모델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런웨이 입구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던 유채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거봐, 내가 뭐랬어. 경험 없는 사람한테 맡기면 변수에 대처를 못 한다니까. 서준아, 지금이라도 내 세컨드 라인 모델을 피날레에 세워. 의상도 내 걸로 바꾸고."

서준은 채영의 제안을 무시한 채, 구석에서 눈물을 참으며 옷을 매만지고 있는 다은을 쳐다보았다. 그는 천천히 다은에게 걸어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이다은 씨, 나를 봐요."

다은이 젖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서준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강렬했다.

"그 옷을 만든 사람보다 그 옷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옷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이 옷에 담긴 진심을 가장 잘 표현할 사람도 당신뿐이에요."

"설마... 사장님, 제가요? 저는 모델도 아니고, 키도 작고..."

"키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신의 당당함, 그리고 이 옷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이다은 씨, 당신이 직접 런웨이에 서주세요. 이게 내 마지막 카드입니다."

다은의 심장이 멎을 듯이 뛰었다. 수백 명의 관객, 날카로운 카메라 셔터 소리, 그리고 회장님의 매서운 눈빛.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니.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자켓이 마치 '나를 보여줘'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할 수 있겠어요?"

서준의 물음에 다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사장직까지 걸었다면, 자신은 그를 위해 두려움을 던져버려야 했다.

"네... 해볼게요. 제가 만든 진심, 제가 직접 보여줄게요."

그때부터 기적 같은 10분이 시작되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달라붙어 다은의 얼굴을 화려하면서도 생기 있게 다듬었고, 헤어 스태프들은 그녀의 머리를 자연스럽지만 우아하게 올렸다. 평범한 신입사원이었던 다은은, 어느새 프로젝트 '리-본'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피날레 음악이 울려 퍼졌다. 다른 모델들이 퇴장하고, 이제 마지막 주인공이 나설 차례였다. 서준은 런웨이 입구에서 다은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당신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입니다. 가서 마음껏 빛나세요."

그의 따뜻한 응원을 등에 업고, 다은은 첫발을 내디뎠다. 눈부신 화이트 조명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관객석에서는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전문 모델이 아닌, 낯선 여자의 등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은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그녀가 입은 '리-본 자켓'은 조명 아래서 신비로운 은빛을 내뿜으며 춤을 췄다. 다은은 카메라 렌즈가 아닌, 저 멀리 관객석 뒤에서 자신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는 서준의 눈을 보며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모델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워킹보다 당당하고 희망찼다. 런웨이 끝에 선 다은이 살짝 미소 짓자, 찰나의 정적 끝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성공이야...!"

백스테이지에서 지수 과장이 환호성을 질렀다. 채영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고, 관객석에 앉아 있던 강 회장의 입가에도 묘한 미소가 번졌다.

런웨이를 돌아 내려오는 다은의 눈에 서준이 보였다. 그는 무대 아래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서울의 밤, 가장 화려한 무대 위에서 다은은 깨달았다. 그녀의 인생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자, 이 남자와의 사랑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음을.

 

[다음 회 예고] 런칭쇼 대성공! 다은은 단숨에 패션계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서준의 형들이 경영권을 놓고 서준을 압박하기 시작하고, 다은은 서준을 돕기 위해 위험한 비밀 프로젝트를 제안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