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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5화:서울에서의 반격과 뜻밖의 지원군

by AK98 2026. 7. 26.

영업 정지 딱지가 붙은 치과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도 윤서는 외롭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감자며 단호박, 싱싱한 전복죽을 들고 찾아와 윤서의 곁을 지켰고, 경희 역시 치과 내부 청소를 도우며 원장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시각, 태현은 윤서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이른 새벽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몇 시간 뒤 도착한 서울의 풍경은 청호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회색빛 빌딩 숲과 빽빽한 도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차가운 표정. 한때 윤서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을 이 거대한 도시 한복판에서, 태현은 깃을 여미며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태현이 향한 곳은 한국법의학연구소 내에 위치한 대학 동문 형의 연구실이었다.

"태현아, 네가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시골에서 서핑만 타는 줄 알았더니."

태현의 대학 선배이자 저명한 법의학 전문의인 정 교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태현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품에서 윤서의 수술 관련 일지와 보건소에 접수된 부작용 재수술 진단서 복사본을 내밀었다.

"형, 이거 한 번 봐주세요. 치과 대형 임플란트 및 뼈 이식 수술 건인데, 이 진단서의 수술 부위와 차트 기록에 이상한 점 없습니까?"

정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차트와 사진 자료들을 정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살펴보던 정 교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거 순 허당이네. 부작용 재수술이라고 첨부된 엑스레이 사진, 수술 후 최소 6개월 이상 지난 시점의 사진이야. 수술 직후 문제라고 주장하는 시점이랑 고의적으로 날짜가 맞지 않아. 게다가 이 뼈 이식 부위의 음영은 부작용이 아니라 정상적인 골 유착 과정인데? 의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면 속을지 몰라도 조작된 흔적이 너무 뻔해."

"역시 그렇군요."

태현의 눈에 차가운 승부욕이 일렁였다. 의학적 증거는 확보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민우와 그 법률 대리인이 이 조작에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증명이었다.

정 교수의 연구실을 나온 태현은 과거 윤서가 근무했던 강남 모 대형 치과 병원 근처의 한 정갈한 찻집으로 향했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쓴 30대 후반의 여성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찻집 안으로 들어섰다. 과거 윤서가 서울 병원에 재직할 당시 그녀와 가장 합이 잘 맞았던 수간호사, 최 정숙 씨였다.

"공태현 씨 되시죠? 이혜윤 원장님… 아니, 이윤서 원장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최 간호사는 초조한 기색으로 태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태현은 그녀에게 따뜻한 차를 내밀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바쁘신 와중에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간호사님. 윤서 씨 일로 연락드린 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실은… 저도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최 간호사는 깊은 한숨을 쉬며 가방 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와 녹음기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 원장님이 억울하게 치과를 그만두시고 청호리로 내려가신 뒤, 한민우 사장 쪽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왔었어요. 원장님의 과거 수술 차트 원본을 유출하고, 부작용이 난 것처럼 조작된 동의서에 서명해 달라고 거액의 돈으로 저를 회유하려 했죠."

태현의 눈빛이 깊어졌다.

"저는 이 원장님이 얼마나 완벽하고 양심적으로 환자를 집도했는지 옆에서 다 본 사람입니다. 도저히 그 비열한 짓에 동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제게 건넨 협박성 음성 녹음 파일과, 당시 병원 서버에 남아있던 이 원장님의 진짜 수술 기록 원본 백업 파일을 전부 보관해 두었습니다."

최 간호사는 서류 봉투를 태현 쪽으로 밀어 놓았다.

"이 원장님은 제게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르쳐주신 고마운 분이에요. 그분이 시골에서 또다시 이런 억울한 모함을 당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 자료로 꼭 누명을 벗겨주세요."

뜻밖의 강력한 조력자의 등장과 완벽한 물증 확보에 태현의 가슴이 뜨겁게 요동쳤다. 한민우의 오만이 만든 균열이 마침내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간호사님. 이 은혜는 윤서 씨와 함께 반드시 갚겠습니다."

모든 증거를 확보한 태현은 즉시 서울 고검 출신의 능력 있는 변호사 친구에게 연락해 보건복지부 행정처분 이의신청서 및 한민우와 김창수 변호사를 향한 '무고 및 업무방해, 공문서위조 혐의' 고소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서울의 한강 고수부지에서 태현은 청호리에 있는 윤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 "태현 씨! 서울은 잘 도착했어요? 밥은 먹었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서의 다정한 목소리에, 하루 종일 치열하게 달렸던 태현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네, 윤서 씨. 밥도 잘 먹고 일도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다 윤서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분들 덕분이에요."

— "정말요? 증거를 찾은 거예요?"

"네. 이제 저들이 그어놓은 치졸한 선을 통째로 날려버릴 일만 남았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갈 테니까, 치과 문 환하게 열어두고 기다려요."

— "고마워요, 태현 씨… 정말 고마워요."

윤서의 목소리가 울컥 젖어 들었다. 태현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어조로 속삭였다.

"윤서 씨, 내가 말했죠? 내 바다는 윤서 씨를 절대로 홀로 두지 않는다고요. 내일 봐요, 내 사람."

서울의 회색빛 밤하늘 아래에서도, 태현의 마음은 이미 은빛 윤슬이 반짝이는 청호리의 푸른 바다를 향해 내닫고 있었다. 반격의 서막이 마침내 오른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16화 예고] 태현이 가져온 결정적 증거로 보건소의 진료 중단 명령은 전격 철회되고, 한민우는 도리어 무고죄로 형사 고소를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궁지에 몰린 민우가 윤서를 직접 찾아와 마지막 구걸을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