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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최종화: 우리들의 가장 눈부신 런웨이

by AK98 2026. 6. 22.

5월의 서울은 1년 전 그날처럼 유난히도 맑고 푸르렀다. 남산타워 위로 펼쳐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가로수들의 초록빛 잎사귀들은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JS 패션 강서준 사장과 이다은 디렉터의 결혼식 당일. 모두가 최고급 호텔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러질 거라 예상했던 결혼식은, 뜻밖에도 두 사람의 진심이 담긴 곳이자 '리-본(Re-Born)' 프로젝트의 고향인 '창신동의 오래된 한옥 마당'에서 열렸다.

"다은 씨,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내가 본 신부 중에 최고야!"

마케팅팀의 지수 과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눈물을 훔쳤다. 다은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화려한 수입 브랜드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유품이었던 손수건의 자수 문양을 모티브로, 다은이 직접 디자인하고 창신동의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완성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드레스였다.

"이다은 씨, 준비됐습니까?"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다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 서준은 검은색 턱시도를 빈틈없이 차려입고 있었다. 평소의 냉철한 사장님의 모습 위에, 오늘만큼은 새신랑의 설렘과 떨림이 가득 묻어났다. 서준은 드레스를 입은 다은을 보는 순간, 숨이 멎은 듯 자리에 얼어붙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다은 씨. 내 안목이 역시 틀리지 않았네요."

"서준 씨도 오늘 정말 멋져요. 우리, 진짜 결혼하는 거 맞죠?"

다은이 수줍게 웃으며 서준의 손을 잡았다. 서준은 그녀의 손등에 깊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럼요. 이제 내 인생의 모든 런웨이는 당신과 함께입니다."

마당으로 나가자, 소박하지만 따뜻한 야외 식장이 펼쳐졌다. JS 패션의 임원들과 회장님뿐만 아니라, 다은의 고향 가족들, 그리고 창신동 골목의 장인들과 이웃들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스몰 웨딩을 반대했던 강 회장도 마당을 가득 채운 온기와 사람들의 진심 어린 미소를 보며 흐뭇한 허허 웃음을 짓고 있었다.

주례도, 엄숙한 격식도 없었다.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두 사람은 버진로드 대신 한옥 마당에 길게 깔린 은빛 융단 위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

단상 위에 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직접 쓴 서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처음 출근하던 날, 제 실수로 사장님의 수트에 라떼를 쏟았던 그 아찔한 순간이 제 인생 가장 큰 축복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저를 믿어주고 지켜준 이 사람과 함께,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든 계절을 사랑으로 채워가겠습니다."

다은의 목소리에 이어 서준이 다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차가운 숫자가 전부인 줄 알았던 제 무채색 세상에, 뜨거운 라떼처럼 찾아와 준 사람입니다. 당신이 제 옷에 남긴 그 갈색 얼룩은 제 심장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문양이 되었습니다. 사장으로서가 아닌, 한 남자로서 당신의 영원한 조력자가 되어 평생을 약속합니다."

두 사람의 서약이 끝나자, 하늘 위로 수천 개의 비눗방울과 꽃가루가 축복처럼 흩날렸다. 서준은 다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깊고 따뜻한 입맞춤을 건넸다. 서울의 푸른 봄 하늘 아래, 두 사람의 완벽한 해피엔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식을 마치고 피로연이 한창일 무렵, 두 사람은 잠시 조용한 마루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서준은 비서가 챙겨다 준 따뜻한 카페라떼 두 잔을 다은에게 건넸다.

"자, 이건 쏟지 말고 조심히 마셔요, 이 디렉터."

"치, 이제 안 쏟거든요? 사장님?"

다은이 장난스럽게 흘겨보자, 서준은 참지 못하고 다은을 자신의 품으로 꽉 끌어당겼다. 컵 홀더 너머로 전해지는 라떼의 온기가 두 사람의 심장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첫 출근의 엉뚱한 사고로 시작된 인연은 폭풍 같은 나날을 지나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서울의 화려한 빌딩 숲 사이, 작은 한옥 마당에서 시작되는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완벽한 '갑옷'이자 '위로'가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