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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6화:바다 위에 그어진 선

by AK98 2026. 7. 7.

“영업?”

민우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청호리의 흙먼지 묻은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불쾌하다는 듯 코를 찡긋거리던 민우는, 태현의 낡은 셔츠와 다리의 붕대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경멸이 서려 있었다.

“어디서 푼돈 만지는 시골 장사꾼이 내 앞을 막아서는 거지? 비켜. 난 이혜윤과 할 얘기가 있어서 온 거니까.”

민우의 오만한 말투에도 태현은 까딱없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서며 윤서를 제 등 뒤로 완전히 감추었다. 다친 다리 때문에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그의 넓은 어깨는 바다를 막아선 방파제처럼 단단하고 미동조차 없었다.

“여기서 버는 돈이 푼돈이든 억만금이든, 그건 손님이 상관하실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제 가게 안에서 제 소중한 사람에게 무례하게 구는 건, 사장으로서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소중한 사람.’

태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단어에 윤서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민우 역시 뜻밖의 단어에 눈썹을 치켜세우며 실소를 터뜨렸다.

“소중한 사람? 혜윤아, 너 진짜 미쳤구나. 고작 이런 어리숙한 시골 놈이랑 소꿉놀이하려고 서울을 버린 거야? 네 부모님이 너 찾으려고 온 서울을 다 뒤집어놓으셨어. 이 말도 안 되는 촌구석 병원 정리하고 당장 올라가자. 아버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까.”

민우는 당연하다는 듯 윤서의 손목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서울에 있을 때, 민우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윤서의 의견이나 감정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부모님의 통제가 우선이었고, 윤서는 그것이 당연한 배려인 줄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윤서는 달랐다. 청호리의 푸른 바다를 매일 바라보며, 그리고 제 손으로 따뜻한 사람들을 치료하며 그녀는 스스로 서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손 치워, 한민우 씨.”

윤서가 태현의 어깨 너머로 걸어 나와 민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눈빛에 민우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여기서 ‘이혜윤’이라는 사람은 없어. 난 청호리 ‘바른 바다 치과’의 원장 이윤서야. 그리고 당신과 나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할 얘기도, 지킬 약속도 남아있지 않아.”

“혜윤아!”

“그렇게 부르지 마!”

윤서의 목소리가 바다 바람을 가르며 선명하게 울렸다. 매사 얌전하고 남의 뜻에 맞추기만 하던 약혼녀의 낯선 모습에 민우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부모님의 반대를 핑계로 나를 가장 비참하게 버려두었던 건 당신이야. 나를 지킬 용기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동정심인지 집착인지 모를 태도로 내 삶을 흔들지 마. 난 지금 내 삶이 아주 만족스럽고, 이곳 청호리가 좋아. 그러니까 당장 돌아가 줘.”

민우는 차오르는 굴욕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자신의 편은 없었다. 태현의 깊고 서늘한 눈빛은 민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경계하고 있었고, 윤서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했다.

“그래,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네가 이런 냄새 나는 시골 어촌 구석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며칠 지나면 지겨워서 제발로 올라오게 될 거야.”

민우는 쏘아붙이듯 말을 내뱉고는 거칠게 돌아섰다. 그가 타고 온 은색 세단이 흙먼지를 길게 내뿜으며 서핑 숍 앞마당을 빠져나갔다.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 끈이 툭 끊어졌다. 윤서는 다리가 후들거려 테라스 난간을 짚으며 주저앉을 뻔했다. 그런 윤서의 어깨를 태현이 얼른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괜찮아요, 윤서 씨?”

걱정 가득한 태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윤서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끄러움과 억울함, 그리고 자신을 지켜준 태현에 대한 고마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흐읍… 미안해요, 태현 씨. 나 때문에 이런 소란스러운 일에 말려들게 해서… 다친 다리도 아직 다 안 나았는데…”

태현은 말없이 윤서의 눈물을 제 손가락 끝으로 살며시 닦아주었다. 그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이 닿자 차갑게 얼어붙었던 윤서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태현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윤서를 데리고 숍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태현이 따뜻한 국화차 한 잔을 내밀었다. 노란 국화 꽃잎이 투명한 잔 속에서 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마셔봐요. 마음 진정시키는 데 아주 좋습니다.”

윤서가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온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차를 한 모금 머금고 나자, 가쁘던 숨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태현 씨.”

“네, 윤서 씨.”

“아까… 나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신 거… 그냥 상황 모면하려고 하신 말씀인 거 아는데, 그래도 정말 감사했어요.”

윤서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태현이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파도가 모래사장을 간지럽히는 것처럼 다정했다.

“누가 그래요? 상황 모면하려고 한 말이라고.”

“네…?”

윤서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태현이 턱을 괴고 맑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장난기 가득하면서도 진지함이 묻어나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거짓말 잘 못 합니다. 그리고 청호리 사람들은 한 번 소중하다고 생각한 건 끝까지 지켜요. 그러니까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입니다, 이윤서 원장님.”

창밖으로 청호리의 밤하늘이 푸른빛으로 짙어지고 있었다. 서울의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과 멀리서 반짝이는 어선의 불빛들이 두 사람의 따뜻한 공간을 축복하듯 비추고 있었다. 과거의 그림자는 지나갔고, 윤서의 마음속에는 오직 태현의 다정한 목소리만이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들고 있었다.

 

[이어지는 7화 예고] 민우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마을 리조트에 머물며 치과 주변을 맴돕니다. 한편, 태현은 상처받은 윤서의 기분을 전환해 주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아주 특별한 밤바다 데이트를 준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