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21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화:파도 소리와 은빛 간판 서울의 하늘은 늘 회색빛 빌딩숲에 가려 숨이 막혔다. 강남의 한 대형 치과에서 페이닥터로 일하던 윤서에게 지난 몇 달간의 시간은 폭풍우와도 같았다. 3년을 만났고, 당연히 미래를 함께할 줄 알았던 전 남자친구와의 결혼은 집안의 격차와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라는 벽에 부딪혀 허무하게 깨져버렸다.“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집안에 들어가니?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어머니의 날카로운 음성과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던 전 남자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부모님이 정해준 안락한 궤도에서 단 한 번도 이탈한 적 없던 모범생 윤서의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반항심이 싹텄다.‘내가 원하는 삶은 내가 결정해.’윤서는 사표를 던졌고, 모아둔 예금과 대출을 끌어모아 연고도 없는 동해안의 작은 어촌 마을, ‘청호리.. 2026. 6. 25.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최종화: 우리들의 가장 눈부신 런웨이 5월의 서울은 1년 전 그날처럼 유난히도 맑고 푸르렀다. 남산타워 위로 펼쳐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가로수들의 초록빛 잎사귀들은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JS 패션 강서준 사장과 이다은 디렉터의 결혼식 당일. 모두가 최고급 호텔의 삼엄한 경비 속에서 치러질 거라 예상했던 결혼식은, 뜻밖에도 두 사람의 진심이 담긴 곳이자 '리-본(Re-Born)' 프로젝트의 고향인 '창신동의 오래된 한옥 마당'에서 열렸다."다은 씨,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내가 본 신부 중에 최고야!"마케팅팀의 지수 과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눈물을 훔쳤다. 다은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입은 웨딩드레스는 화려한 수입 브랜드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유품이었던 손수건.. 2026. 6. 22.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19화: 결혼 준비는 프로젝트보다 어렵다?! "네! 좋아요, 서준 씨. 당신과 함께라면 평생 어떤 런웨이라도 걸을게요."다은의 눈물 섞인 대답과 함께 파티장에는 축포가 터졌고, 전 세계 패션계 인사들의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서준은 다은의 손가락에 목련 반지를 끼워주며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로 만들어 주겠노라 다짐했다.하지만 감동적인 프로포즈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두 사람 앞에는 '결혼 준비'라는 인생 최대의 난공불락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다."서준아, 예식장은 당연히 가문의 전통대로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해야지. 하객만 최소 천 명은 올 텐데." 큰형 서진은 경영권 다툼에서 밀려난 뒤, 어떻게든 동생의 결혼식을 화려하게 꾸며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 했다.반면 다은의 생각은 달랐다. "서준 씨, 저는 화려한 호텔보다 우리가 처음.. 2026. 6. 1.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18화: 다시 태어난 계절, 새로운 이름으로 폭풍이 휩쓸고 간 JS 패션의 아침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기로 가득했다. 로비를 지날 때마다 들려오던 수군거림은 이제 존경과 선망이 담긴 인사로 바뀌어 있었다. 다은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을 보며 미소 지었다. 컵홀더에는 서준의 정갈한 글씨로 ‘오늘도 고생해요, 나의 디렉터’라고 적혀 있었다.이사회의 결정은 파격적이었다. 유채영 실장은 조작 및 명예훼손으로 해임되었고, 그녀가 맡았던 신규 브랜드 총괄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강 회장은 그 자리에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마케팅팀 신입사원 이다은을 ‘리-본(Re-Born)’ 라인의 메인 디렉터로 임명한다.”입사 몇 달 만에 팀원에서 디렉터로, 그야말로 ‘라떼 신입’의 화려한 비상이었다. 다은은 사령장을 손에 쥐고도 믿기지 않는 .. 2026. 5. 14.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17화: 시간이 새긴 증거,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다은의 고향 집은 나지막한 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한옥이었다. 마당 한구석에 핀 목련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고, 서울의 소음 대신 정겨운 풀벌레 소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서준은 낯선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며 다은이 자라온 흔적을 눈에 담았다."여기가 제가 꿈을 키우던 곳이에요. 사장님을 모시기엔 너무 허름하죠?""아니요. 아주 따뜻한 곳이네요. 다은 씨가 왜 그런 다정한 디자인을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다은은 서둘러 안방 다락방을 뒤졌다. 먼지 쌓인 상자들 사이에서 낡은 비단보에 싸인 물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평생을 기록해온 자수 일기장과 낡은 손수건들이었다."찾았어요! 여기 보세요, 서준 씨."빛바랜 종이 위에는 다은이 '리-본' 프로젝트에서 선보였던 독특한 자.. 2026. 5. 14.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16화: 진실의 프레임, 엇갈린 공격 서준의 파격적인 기자회견은 세상을 뒤흔들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다음 날 아침, JS 패션 사옥 앞은 해임을 요구하는 주주들과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서준의 형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다.“강 사장, 제정신인가? 회사 가치를 지키겠다고 공언하더니, 결국 사적인 감정으로 브랜드를 진흙탕에 처박았어.”강서진 전무의 서슬 퍼런 공격에도 서준은 꼿꼿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유채영 실장이 이사회장에 난입하듯 들어와 서류 뭉치를 던진 것이다.“이게 다입니까? 강 사장님이 지키려던 그 ‘진심’이라는 게 사실은 ‘도둑질’이었다면요?”서류에는 다은이 기획한 ‘리-본’ 라인의 초기 스케치와 해외 무명 디자이너의 과거 포트폴리오가 나란히 비교되어 있었다. 자수.. 2026. 5. 12.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