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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3화:체육관의 자물쇠와 만화방의 그늘

by AK98 2026. 8. 17.

학교 체육관의 커다란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잠겼다. 아현은 가방에서 가지고 온 굵은 쇠사슬과 큼직한 자물쇠로 문고리를 몇 번이나 감아 죘다.

“윤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문 열지 못해?”

문 너머에서 체육부장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체육관 안쪽에는 아현이 직접 큼직한 붓글씨로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태권도부 해체 철회! 우리는 계속 달린다!]

“못 열어요! 코치님 돌아오시고 태권도부 해체 철회할 때까지 저 여기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예요!”

아현의 목소리가 텅 빈 체육관을 울렸다. 사실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징계나 정학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순히 물러서면 10년을 차온 발차기도,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도 전부 거품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아현은 홀로 체육관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샌드백은 여전히 매달려 있었고, 매트 위엔 아이들의 땀 냄새가 옅게 남아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창밖으로 쓸쓸한 가을바람 소리가 웅웅거렸다. 배가 고프고 무릎이 시려왔지만, 아현은 오기로 입술을 깨물었다.

‘포기 안 해. 절대 안 해.’

같은 시각, 골목 어귀의 만화방 ‘청춘문화’의 분위기는 험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콰당-!

책장에 꽂혀 있던 만화책 수십 권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사채업자 둘이 카운터 책상을 발로 차며 지호를 위협하고 있었다.

“야, 한지호. 네 아비가 어디 튄 줄 우리가 모를 줄 알고? 이따위 구멍가게 알바나 해서 그 큰 빚을 언제 갚을 건데?” “…….”

지호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쏟아진 책들을拾어 담았다. 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죽어 있었다. 이미 수없이 겪은 일이었다. 어른들의 욕설과 폭력, 그리고 침뱉음.

“너 대학 다닌다며? 명문대생이라며? 그럼 대출이라도 더 받아오든가, 아니면 장기라도 팔아야 할 거 아니야!”

덩치 큰 사채업자가 지호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셔츠 단추가 툭 하고 튕겨 나갔다. 지호는 반항하지 않았다. 반항해 봐야 돌아오는 것은 더 큰 폭력뿐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이 짓밟히는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만하세요.”

그때, 만화방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체육복 차림의 아현이었다.

교비 지원이 끊겨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체육관에서 촛불을 켜고 버티다, 문득 지호가 떠올라 만화방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현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넌 뭐야, 꼬맹이는 빠져.” “그 손 치우시죠. 남의 멱살 함부로 잡는 거, 폭행죄인 건 아세요?”

아현이 지호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섰다. 지호는 놀란 눈으로 아현을 바라보았다.

“아현아, 너 여기 왜… 나가. 어서.” “가만히 있어요, 오빠.”

아현은 어깨를 쫙 펴고 사채업자들을 노려보았다. 사채업자 하나가 비웃으며 아현의 어깨를 툭 밀쳤다.

“어라, 이 기지배 보게? 어린 게 어디서 꼬박꼬박 덤벼?”

그 순간이었다. 아현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상대가 어깨를 밀치는 힘을 이용해 손목을 낚아채고, 순식간에 축 축을 틀어 상대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태권도 유단자의 단단한 몸놀림이었다.

쿵-!

“으악!”

사채업자가 바닥에 나뒹굴자, 다른 한 명이 인상을 쓰며 주먹을 휘둘렀다. 아현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주먹을 피한 뒤, 벼락같은 오른발 앞차기로 그의 복부를 정확히 가격했다.

“억…!”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었다. 험악했던 사채업자들이 끙끙대며 바닥을 구르자, 아현은 카운터 위에 있던 만화책 한 권을 집어 들며 차갑게 말했다.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세요. 저 체육고등학교 태권도부거든요? 영업방해에 폭행으로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가요!”

사채업자들은 아현의 눈빛에 기가 질린 듯, 투덜거리며 서둘러 만화방을 빠져나갔다.

유리문이 닫히고 만화방 안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바닥에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만화책들과 찢어진 장부책이 나뒹굴고 있었다.

“너… 미쳤어?”

지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감사함이나 시원함이 아니었다. 지호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고 덤벼? 너 그러다 진짜 큰일 나면 어쩌려고!” “그럼 어떡해요! 오빠가 맞고 있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어요?” “누가 도와달래?! 내 일이야! 네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지호가 처음으로 아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가장 지저분하고 치욕스러운 바닥을, 가장 맑고 순수한 소녀에게 보여주었다는 자괴감이 지호를 짓눌렀다.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 비참한 현실 따위, 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현은 지호의 고함에 흠칫 놀랐지만, 이내 지호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지호는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독한 수치심에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아현은 천천히 다가가 바닥에 떨어진 만화책들을 하나씩拾어 올리기 시작했다.

“동정한 거 아니에요.” “…….” “오빠가 나한테 그랬잖아요.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준다고.”

아현이 만화책을 단정하게 정돈해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며 지호를 돌아보았다.

“나도 똑같아요. 오빠가 이렇게 짓밟히는 거 싫어요. 오빠는 건물을 짓고 싶어 하는 멋진 사람이잖아.”

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빚쟁이의 자식, 낙오자, 불쌍한 놈으로 볼 때, 오직 이 소녀만큼은 자신을 ‘건축가를 꿈꾸는 사람’으로 바라봐 주고 있었다.

아현은 주머니에서 아침에 사둔 빵 한 개를 꺼내 지호의 손에 쥐여주었다.

“나 체육관 점거 농성 중이거든요. 비밀인데요, 배고파서 잠깐 나와본 거예요.”

아현이 특유의 엉뚱하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오빠, 내일 새벽에도 신문 돌릴 거죠? 나 또 도와줄 테니까 빵 사줘요.”

지호는 손에 쥐어진 차가운 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허탈한 듯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옷소매로 눈가를 쓱 닦아냈다.

“…바보냐? 농성을 하려면 먹을 것부터 챙겨야지.” “아, 맞다. 깜빡했다.”

지호가 만화방 구석에서 라면 두 개를 꺼냈다.

“가자. 너희 체육관으로.” “네?” “경비 아저씨한테 걸리면 만화방 알바생이 야식 배달 왔다고 하지 뭐.”

지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만화방 안으로, 작은 촛불 하나가 켜지는 순간이었다.

[제4화 예고]

차가운 체육관 바닥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서로의 꿈과 상처를 나누는 아현과 지호.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학교 측은 체육관 문을 강제로 부수고 들어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