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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2화: 사장실에서의 첫 번째 미션

by AK98 2026. 5. 2.

마케팅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은은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입사 1시간 만에 ‘사장님께 라떼를 쏟은 신입’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될 줄이야. 다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팀장인 김지수 과장 앞으로 다가갔다.

“저... 과장님. 신입사원 이다은입니다. 아까 로비에서...”

“들었어, 다은 씨. 로비 전광판보다 우리 회사 메신저가 더 빠르거든.”

지수 과장은 안쓰러운 듯 다은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 마. 사장님이 그렇게 빡빡한 분은 아니셔. 다만... 좀 독특하시긴 하지. 자, 일단 책상 정리부터 해. 짐 풀 시간은 줄게.”

다은은 떨리는 손으로 개인 사물함을 정리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까 본 서준의 눈빛뿐이었다. 날카로운 수트를 적시던 갈색 커피, 그리고 그 사이로 느껴지던 단단한 근육의 촉감. 다은은 자신의 뺨이 다시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찬물을 들이켰다.

그때, 팀의 인터폰이 울렸다.

“비서실입니다. 마케팅팀 신입사원 이다은 씨, 지금 즉시 사장실로 올라와 주세요.”

사무실 정적이 깨졌다. 팀원들이 일제히 다은을 쳐다보았다. 지수 과장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올 것이 왔네. 다은 씨, 정신 바짝 차려. 사과 확실히 하고, 시키는 건 무조건 하겠다고 해. 알았지?”

다은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18층 사장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올라갈 때마다 심장 박동수도 함께 치솟았다. 마침내 도착한 사장실 앞.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통유리 너머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광활한 집무실이 나타났다.

서준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아까의 젖은 수트 대신 깔끔한 화이트 셔츠를 입은 그는, 마치 화보 속에서 튀어나온 모델 같았다.

“오셨습니까.”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다은은 얼른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까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세탁비는 물론이고 어떤 보상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서준은 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는 다은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의 시선이 다은의 얼굴에 머물자, 다은은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이다은 씨, 아까 내가 말했죠. 세탁비는 필요 없다고.”

“네... 하지만 제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마음이 무거우면 몸을 쓰면 됩니다. 마케팅팀이라면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아야겠죠?”

서준이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자료 뭉치를 다은 쪽으로 밀었다.

“다음 주에 런칭할 우리 회사의 신규 에코 라인, ‘리-본(Re-Born)’의 시장 조사 자료입니다. 기존 마케팅 안이 너무 전형적이라 마음에 안 들던 참이었는데, 마침 다은 씨가 나타났네요.”

“네...?”

다은이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퇴근 전까지, 이 자료들을 읽고 ‘신입사원의 눈으로 본’ 기획 안을 딱 세 페이지만 써오세요. 아까 쏟은 라떼만큼이나 뜨겁고 신선한 걸로. 어때요, 할 수 있겠습니까?”

서준의 눈에 장난스러운 빛이 스쳤다. 이건 단순한 벌이 아니었다. 다은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시험이자 기회였다. 다은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하겠습니다! 반드시 만족하실만한 기획안을 가져오겠습니다!”

“좋아요. 아, 그리고 이다은 씨.”

다은이 문을 나서려는데 서준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라떼 향은 꽤 좋더군요. 다음엔 내 옷 말고, 컵에 담긴 걸로 대접해줬으면 좋겠는데.”

서준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다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다은은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후다닥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닫힌 문 너머로 서준은 다은이 나간 자리를 잠시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수트는 비서실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눈이 커다란 토끼처럼 놀라 허둥대면서도, 제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던 그 신입사원이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 쓰였다.

다은은 사무실로 내려오는 내내 심장을 진정시켜야 했다. 사장님은 무서운 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정하고... 또 너무 잘생겼다.

‘정신 차려, 이다은! 이건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업무라고!’

다은은 책상에 앉아 서준이 준 자료를 펼쳤다. ‘리-본(Re-Born)’ 라인. 버려지는 원단을 재활용해 만드는 하이엔드 패션. 다은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장 잘하고 싶었던 분야였다.

창밖의 서울 하늘은 어느덧 푸른빛을 더해가고 있었고, 다은의 신입사원 라이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아주 화끈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회 예고] 밤늦게까지 이어진 다은의 야근. 텅 빈 사무실에 갑자기 나타난 서준! 두 사람은 편의점 컵라면을 사이에 두고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