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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단편소설] 런웨이 위의 라떼 - 제5화: 예상 밖의 퇴근길, 그리고 첫 번째 식사

by AK98 2026. 5. 2.

"정말... 제가 장소를 정해도 괜찮을까요?"

퇴근 시간 직전, 서준으로부터 온 짧은 문자 한 통에 다은의 심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7시, 정문 앞. 장소는 이다은 씨가 정한 곳으로 가죠.] 사장님과의 저녁 식사라니. 다은은 점심시간 내내 맛집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그녀가 선택한 곳은 화려한 파인 다이닝이 아닌 자신의 단골 식당이었다.

7시 정각, 정문 앞에 멈춰 선 검은색 세단에서 서준이 내렸다. 퇴근길의 직장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다은에게 다가왔다.

"어디로 갈까요? 신입사원의 안목을 믿어보죠."

그녀가 서준을 안내한 곳은 종로의 좁은 골목 끝에 위치한 작은 **'심야 식당'**이었다. 따뜻한 노란 조명이 비치는 낡은 나무 간판에는 '봄의 맛'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사장님께는 너무 소박할지도 모르겠지만... 여기 제철 나물 파스타가 정말 맛있거든요. 제가 힘들 때마다 오는 곳이에요."

서준은 허리를 숙여 낮은 문을 통과하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덩치 큰 그에게 식당은 조금 좁아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흥미로운 표정으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했다.

"나쁘지 않네요. 아니, 오히려 좋습니다. 늘 숨 막히는 정식 코스만 먹다가 이런 곳에 오니 진짜 '퇴근'을 한 기분이랄까."

두 사람은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주문한 파스타와 시원한 맥주 두 잔이 놓였다. 서준은 넥타이를 살짝 풀고 맥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오늘 발표, 사실 쉽지 않았을 텐데. 최 이사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깐깐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설득하다니, 이다은 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과찬이세요. 전 그저 제가 믿는 걸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사장님이 제 기획안의 진심을 알아봐 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죠."

다은이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명 아래 비친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치고 아름다웠다. 서준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웃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다은 씨는 왜 패션 회사에 들어오고 싶었습니까?"

"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옷은 누군가에게는 **'갑옷'**이 되어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JS 패션의 옷을 입었을 때,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화려함만을 쫓는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이토록 순수하게 본질을 고민하는 사람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문득 아까 다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까 탕비실에서 그랬죠? 내 눈빛이 차갑지 않았다고."

"아... 네. 사실 처음 뵀을 때부터 느꼈어요.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시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시고... 또 다정하신 분일 거라고요."

다은의 돌직구 같은 칭찬에 서준은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다은 씨, 착각이 심하네요. 나, 회사에서 아주 무서운 사장으로 소문나 있는데."

"그건 사장님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겠죠. 저한테는 이미... 따뜻한 분인걸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작은 식당 안을 채운 지글거리는 요리 소리와 잔잔한 음악, 그리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두 사람의 시선. 맥주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눈앞의 남자 때문인지 다은의 뺨은 기분 좋게 붉게 달아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서울의 밤거리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서준은 다은을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차 안에서 서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일부턴 다시 무서운 사장님으로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오늘만 말해두죠. 오늘 저녁, 정말 좋았습니다. 이다은 씨."

차에서 내린 다은은 멀어져가는 서준의 차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첫 출근의 라떼 사고가 이런 기적 같은 저녁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회사 게시판에는 다은과 서준이 나란히 차에 오르는 사진과 함께 익명의 게시글이 올라오며 평화롭던 다은의 신입사원 생활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다음 회 예고] "낙하산이야, 아니면 유혹이야?" 회사에 퍼진 근거 없는 소문들. 다은은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고립되고, 서준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