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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3화:체육관의 자물쇠와 만화방의 그늘 학교 체육관의 커다란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잠겼다. 아현은 가방에서 가지고 온 굵은 쇠사슬과 큼직한 자물쇠로 문고리를 몇 번이나 감아 죘다.“윤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문 열지 못해?”문 너머에서 체육부장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체육관 안쪽에는 아현이 직접 큼직한 붓글씨로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태권도부 해체 철회! 우리는 계속 달린다!]“못 열어요! 코치님 돌아오시고 태권도부 해체 철회할 때까지 저 여기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예요!”아현의 목소리가 텅 빈 체육관을 울렸다. 사실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징계나 정학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순순히 물러서면 10년을 차온 발차기도,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도 전부 거품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아현은 홀로 체육관 바닥에.. 2026. 8. 17.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2화:새벽의 바람, 그리고 새벽 4시의 재회 1997년의 밤은 너무 길었고, 아침은 지나치게 서둘러 찾아왔다.학교 태권도부 해체 통보가 떨어진 다음 날, 아현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눈을 떴다. 부원들이 모두 절망에 빠져 연습실에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다. 아현은 도복을 챙겨 입고 운동화 끈을 꽉 동여맸다.‘부원이 없으면 나 혼자라도 뛰면 돼. 코치님이 없으면 혼자 샌드백을 차면 되고.’아현은 시흥의 조용한 주택가 골목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맑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이 IMF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적어도 아현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큼은 견고해야 했다.그 시각, 지호는 새벽 4시의 눅눅한 공기를 맞으며 스쿠터에 올라타고 있었다... 2026. 8. 14.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1화:1997년 가을, 도복 띠를 매는 법 1997년 가을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뉴스에서는 연일 듣도 보도 못한 ‘외환위기’니 ‘IMF 지원 요청’이니 하는 단어가 흘러나왔고, 어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TV 속 앵커의 어두운 목소리가 거리에 깔릴 때마다, 사람들은 어깨를 더욱 좁힌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하지만 시흥고등학교 체육관 한구석, 태권도부 연습실의 공기만큼은 열기로 뜨거웠다.‘쌕, 쌕-!’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붉은색 호구를 때리는 자비 없는 오른발 뒤후려차기가 공기를 갈랐다. 타격음이 체육관 천장을 울리자마자 샌드백을 잡고 있던 부원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아현아! 제발 살살 좀 해! 타격 미트 찢어지겠다!”“자세가 허술하니까 밀리지! 다시 잡아, 김은서!”땀에 젖은 단발머리를 털어내며 아현이 도복 .. 2026. 8. 11.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최종화:윤슬보다 찬란한 우리의 수평선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청호리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눈부셨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은빛 윤슬이 동해 바다 전체를 보석으로 뿌려놓은 듯 사방에서 반짝이고 있었다.이날 청호리 백사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따뜻한 결혼식장이 차려졌다.화려한 버진로드 대신 조개껍데기와 하얀 모래가 길을 이루었고, 고급 생화 장식 대신 마을 어르신들과 서핑 숍 회원들이 며칠 동안 정성스레 깎고 가꾼 들꽃 화분과 목조 아치가 백사장을 감쌌다. 단상 뒤로는 장엄하게 밀려드는 푸른 파도와 수평선이 완벽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었다.치과 대기실에서 하얀 리넨 드레스를 입은 윤서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호흡을 내쉬었다. 화려하고 경직된 서울의 웨딩드레스 대신 선택한 깔끔하고 단아한 드레스는, 청.. 2026. 8. 8.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9화:함께 가꾸는 바다, 그리고 영원의 약속 여름의 청량함이 깊어가던 청호리 마을에 가슴 벅찬 경사가 찾아왔다.윤서의 '바른 바다 치과'가 단순한 개별 의원을 넘어, 지자체 및 어촌계와 협력하여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청호리 구강 보건·복지 케어 센터'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윤서의 정성 어린 진료에 감동한 보건소와 시청에서 적극적인 예산 지원을 결정했고, 윤서의 아버지 이찬영 원장 역시 서울 병원 측의 최첨단 이동 진료 기기를 기증하며 힘을 보탰다.센터 개소식 날, 치과 앞마당은 아침부터 축제 분위기로 왁자지껄했다."아이구, 우리 금손 원장님 덕에 시골 늙은이들 이빨 걱정 없이 만수무강하겠네!"박 씨 할머니를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은 가슴에 알록달록한 카네이션을 달고 기쁨의 눈시울을 붉혔다. 어촌계장님은 시청에서 받은 감사패를 윤서에게 내밀.. 2026. 8. 5.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8화:푸른 여름과 아주 특별한 약속 부모님의 공식적인 인정과 축복을 받은 이후, 윤서와 태현을 누르던 마지막 먹구름마저 깔끔하게 상쾌한 바닷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어느덧 청호리에는 짙푸른 녹음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가득한 한여름이 찾아왔다. 마을 전체가 아침부터 시끌벅적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매년 백사장에서 열리는 ‘청호리 여름 바다 축제’와 함께 태현의 서핑 숍 ‘청호 웨이브’가 주관하는 동해안 시니어·아마추어 서핑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원장님! 이것 좀 보세요, 어촌계장님이 오늘 축제라고 전복이랑 소라를 한 가득 쪄서 가져오셨어요!"조무사 경희가 신이 나서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치과는 오늘 하루 특별 휴무를 맞이해 축제 준비를 돕고 있었다. 가운 대신 편안한 리넨 원피스에 넓은 챙모자를 쓴 윤서는 대기실 창밖으로 펼쳐.. 2026.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