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5화:부러진 깃발과 마지막 도면

교무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회의용 탁자 맞은편에 앉은 교감 선생은 손가락으로 서류를 탁탁 치며 아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아현의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애를 잘못 가르쳐서…”를 연발하고 있었다. 평생 시장 골목에서 작은 칼국수 가게를 하며 손마디가 굵어진 어머니의 굽은 등은, 아현의 가슴을 샌드백보다 더 아프게 때렸다. “윤아현 학생. 학교 기물 파손에 무단 … Read more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4화:어둠 속의 라면, 그리고 부서진 자물쇠

새벽이 내리기 전의 체육관은 거대한 동굴 같았다. 학교 쪽에서 전기를 아예 내려버린 탓에, 농구대 아래 작은 촛불 하나만이 바들바들 떨며 그림자를 벽에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희미한 불빛 가운데, 지호가 만화방에서 챙겨온 휴대용 부르스타 위 양은냄비에서 보글보글 라면 끓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와, 냄새 대박이다….” 아현이 무릎을 모아 쥐고 냄비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 Read more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3화:체육관의 자물쇠와 만화방의 그늘

학교 체육관의 커다란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잠겼다. 아현은 가방에서 가지고 온 굵은 쇠사슬과 큼직한 자물쇠로 문고리를 몇 번이나 감아 죘다. “윤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문 열지 못해?” 문 너머에서 체육부장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체육관 안쪽에는 아현이 직접 큼직한 붓글씨로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태권도부 해체 철회! 우리는 계속 달린다!] “못 열어요! … Read more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2화:새벽의 바람, 그리고 새벽 4시의 재회

1997년의 밤은 너무 길었고, 아침은 지나치게 서둘러 찾아왔다. 학교 태권도부 해체 통보가 떨어진 다음 날, 아현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눈을 떴다. 부원들이 모두 절망에 빠져 연습실에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순 없었다. 아현은 도복을 챙겨 입고 운동화 끈을 꽉 동여맸다. ‘부원이 없으면 나 혼자라도 뛰면 돼. 코치님이 없으면 혼자 샌드백을 … Read more

너의 발차기가 하늘에 닿을 때-제1화:1997년 가을, 도복 띠를 매는 법

1997년 가을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뉴스에서는 연일 듣도 보도 못한 ‘외환위기’니 ‘IMF 지원 요청’이니 하는 단어가 흘러나왔고, 어른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TV 속 앵커의 어두운 목소리가 거리에 깔릴 때마다, 사람들은 어깨를 더욱 좁힌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시흥고등학교 체육관 한구석, 태권도부 연습실의 공기만큼은 열기로 뜨거웠다. ‘쌕, 쌕-!’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붉은색 호구를 때리는 … Read more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최종화:윤슬보다 찬란한 우리의 수평선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청호리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눈부셨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은빛 윤슬이 동해 바다 전체를 보석으로 뿌려놓은 듯 사방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날 청호리 백사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따뜻한 결혼식장이 차려졌다. 화려한 버진로드 대신 조개껍데기와 하얀 모래가 길을 이루었고, 고급 생화 장식 대신 마을 어르신들과 서핑 숍 회원들이 며칠 … Read more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9화:함께 가꾸는 바다, 그리고 영원의 약속

여름의 청량함이 깊어가던 청호리 마을에 가슴 벅찬 경사가 찾아왔다. 윤서의 ‘바른 바다 치과’가 단순한 개별 의원을 넘어, 지자체 및 어촌계와 협력하여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청호리 구강 보건·복지 케어 센터’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윤서의 정성 어린 진료에 감동한 보건소와 시청에서 적극적인 예산 지원을 결정했고, 윤서의 아버지 이찬영 원장 역시 서울 병원 측의 최첨단 이동 … Read more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8화:푸른 여름과 아주 특별한 약속

부모님의 공식적인 인정과 축복을 받은 이후, 윤서와 태현을 누르던 마지막 먹구름마저 깔끔하게 상쾌한 바닷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느덧 청호리에는 짙푸른 녹음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가득한 한여름이 찾아왔다. 마을 전체가 아침부터 시끌벅적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매년 백사장에서 열리는 ‘청호리 여름 바다 축제’와 함께 태현의 서핑 숍 ‘청호 웨이브’가 주관하는 동해안 시니어·아마추어 서핑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원장님! … Read more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7화: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바람

한민우 상무의 구속 수사 소식과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의 검찰 조사 기사는 서울 재계와 의료계를 뒤흔들었다.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사윗감의 추악한 실체와, 딸 혜윤(윤서)이 강남 병원에서 쫓겨나듯 그만둬야 했던 진짜 이유가 밝혀지자 윤서의 부모님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청호리 치과 앞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조용히 멈춰 섰다. 지난번처럼 요란한 위세나 성난 기세는 … Read more

윤슬이 반짝이는 마을-제16화:무너진 오만과 마침내 찾은 이름

다음 날 아침, 청호리 포구는 어제까지의 음산했던 안개가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이 걷히고 눈부신 햇살로 가득했다. 치과 문 앞에서 초조하게 발을 굴리던 윤서의 눈앞에 이른 아침 첫 버스에서 내린 태현의 모습이 보였다. 태현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윤서가 달려가자 태현은 환하게 웃으며 서류 봉투를 들어 보였다. “윤서 씨! 다 끝났습니다. 이제 치과 … Read more